13.일본제국주의와 연변
중국조선력사상식<연변인민출판사> - 2001년 10월 28일
일본제국주의는 언제부터 연변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는가?

일본제국주의는 20세기초부터 연변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다.

1868년의 《메이지유신》이후 일본군국주의는 대륙정책을 고취하면서 조선, 중국 및 씨비리 등지를 병탄하여 대륙제국을 건립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리하여 선후로 중일갑오전쟁, 일로전쟁을 발동하여 중국 동북에서 동청철도(즉 중동철도) 이남으로 세력범위를 확대하였다.

연변은 일제가 오래전부터 침략하려고 음모를 꾸미던 곳이였다. 특히 일로전쟁후 그 음모가 더욱 로골화되었다. 연변을 《한국국토의 방어에서 홀시할수 없는 곳》이라고 하였으며 《만약 간도를 점령하지 못하면 회령을 확보하지 못하게 될것이며》《만약 공세를 취하여 북한방면으로부터 길림에로 진입하려면 우선 간도를 점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로골적으로 떠들어대면서 연변을 동북강점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일로전쟁후 일본제국주의는 연변에 대한 침략을 다그치기 시작하였다.

1907년 8월 20일, 연변침략의 선견대인 일본헌병 61명이 일본군 중좌 사이또의 인솔밑에 연길현 룡정촌에 기여들어 23일에 《통감부간도파출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침략활동을 시작하였다. 사이또일행은 《간도소속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떠들어대면서 《사이섬》이란 《간도》의 지리적범위를 두만강북쪽의 연길, 화룡, 왕청 등 세개 현으로 확대함으로써 국경사단을 조작해냈다. 따라서 《간도》에 있는 조선사람의 생명재산을 보호한다는 허울을 쓰고 공공연히 연변에 주둔해있었다.

이밖에 일제침략자들은 중국의 행정시설들을 무시하고 연변에다 함부로 구(區)와 사(社)를 설치하고 친일분자들을 《도사장》, 《사장》으로 배치하여 《도사장제》를 실시하면서 중국의 지방행정기구에 맞서나섰다. 그리고 신흥평, 국자가, 두도구, 호천포, 우적동, 조양천, 북사평 등지에 일본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친일조직인 일진회(一進會)의 주구들을 이용하여 민족모순을 조작하고 사단을 일으키게 한 다음 일본헌병들이 그 알륵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고 잡아두드리며 탄압하게 하였다.

이때로부터 연변은 계속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며 일제가 동북을 침략하는 발판으로 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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