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간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어떠한가?
중국조선력사상식<연변인민출판사> - 2001년 10월 28일
《간도(間島)》란 원래 조선민간에서 나온 말로서 처음에는 두만강반의 모래톱개간지를 간토(墾土) 혹은 간도(墾島)라고 불렀는데 후에는 사이섬 즉 간도(間島)라는 뜻으로 변했다.

19세기초부터 조선의 월경개간민들은 두만강을 건너 두만강북안에다 사사로이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는데 이런 땅을 간토(즉 일군 땅)라고 불렀다. 례하면 조선무산대안의 개간지를 《무산간토》, 회령대안의 개간지를 《회령간토》, 종성대안의 개간지를 《종성간토》, 온성대안의 개간지를 《온성간토》라고 불렀다. 이는 당시 조선민간에서 한 지방의 명칭을 마음대로 부른 실례이다.

《간도(間島)》란 이름의 시작은 청조 광서년간부터였는데 당시 중국 화룡현경내의 개산툰 광제욕(지금 룡정시에 속함)의 두만강 강바닥에는 장시기동안에 진흙과 모래가 쌓여 길이가 약 2,500메터, 너비가 약 500메터좌우 되는 모래톱이 이루어졌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 모래톱을 가강(假江)이라고 불렀다.

1878년좌우부터 조선 종성농민들은 두만강을 건너와 이 모래톱을 일구고 부치기 시작하였다. 1881년에 그들은 두만강북쪽에다 물도랑을 빼는 바람에 이 모래톱은《섬》으로 되어 사람들은 이를 간도(墾土) 혹은 간도(間島, 사이섬)라고 불렀다. 1888년부터 중국측에서는 이 《섬》을 부치는 조선 종성 농민들에게서 땅세를 받았다.

1903년 조선관원인 리범윤은 중국측 월간국에 공문을 보내여 이 모래톱을 조선농민들이 경작하고있기에 조선땅이라고 하였다. 이에 청조에서는 그의 론조를 반박하고 중국령토임을 천명하였다. 이것이 바로 《간도문제》의 시작이였다. 1904년 6월 15일, 중조 두나라 지방관리들은 《중화변계선후규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규약 제8조에는 《간도라고 하는 광제욕의 가강(假江)의 땅을 의연히 종성 조선인들이 경작하게끔 세를 준다》고 하였다.

그후 조선이주민들이 대폭적으로 이주하고 개간지역범위도 확대됨에 따라, 더욱이는 일제의 침략음모로 하여 《간도(間島)》라는 뜻이 변화되었는데 주로 연변의 연길, 화룡, 왕청 등지를 가리켜 《북간도》 혹은 《간도》 라고 하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