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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일본의 입장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것은 1905년 1월28일. 그로부터 4주 뒤인 2월22일 시마네 현(縣)은 현(縣) 고시40호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 」죽도(竹島)로 명명,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했다. 그후 독도는 1952년 1월 18일,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규정하는 해양 경계선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평화선(Peace Line)'을 규정하였고, 그 뒤 51∼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협상과정에서 두 나라간의 외교문제로 논쟁대상이 되었으나 그 해결이 뒤로 미뤄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최근 선거공약과 정책..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 김병모(金秉模)의 考古學 여행⑦

총 일곱 편에 걸친 김병모님의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를 마감한다. 작은 의문에서 출발했던 한 노학자의 40년에 걸친 탐구과정을 따라가며 다양한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한 분야를 깊이 탐구해온 노학자에게 학문의 길로 접어든 이래 거의 모든 시기를 사로잡았던 화두이며, 긴 탐사의..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 김병모(金秉模)의 考古學 여행⑥

한두 사람의 끈질긴 집념과 노력에 의해 신화와 전설이 역사로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18~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발견된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들이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한다.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도 등장하고 있으며, ‘트로이 목마’로 우리에게 잘 ..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 김병모(金秉模)의 考古學 여행⑤

단군이래 반만년 단일민족의 역사. 우리가 스스로를 설명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벌써 몇 회에 걸쳐 김병모 교수님의 글을 올리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조금씩 써서 올리기 시작한 글도 제법 쌓여서 어느 정도 분류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불과 몇 년이라는, ..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 김병모(金秉模)의 考古學 여행④

하나의 주제나 소재를 가지고 각각 연구하는 분야에 따라 여러 가설들을 세우고,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이는 학자들의 성과물들을 대하게 되면 즐거움이 앞선다. 각각 목적이 다른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자료들을 종합해 새로운 성과를 창출하는 모습은 늘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또한 같은 학..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 김병모(金秉模)의 考古學 여행③

오래 전에 '스키토시베리안 황금유물'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신문을 통해 보게 된 몇 장의 보도사진과 기사를 보며, 당시는 생소한 지역의 유물이었기에 우리 유물과의 유사함이 눈에 들어왔을 뿐 어떤 지역에서 온 것인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진 유물인지에 대한 호기심은 크지 않았다. 막..

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 김병모(金秉模)의 考古學 여행②

역사관련 글들을 접하다 보면 크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를 고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록으로 전하는 문헌을 비교, 검증하는 방법과 유물, 유적을 탐사하는 방법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거기에 기록에 남아있는 옛 지명과 고지도를 대조하는 방법도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인류학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