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는 극장들이 즐비하다. 그 극장들에는 서너 개씩 사진보다 정교한 그림들이 붙어 있다. 가끔 남성 품에 안겨 입맞춤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그림도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의 여성들은 대부분 눈을 살포시 감고 있다.
도대체 여성은 키스할 때 어째서 눈을 감는 것일까? 극장 간판의 사실적인 묘사에 감탄하면서도 늘 떠나지 않는 의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수줍음의 몸짓이 분명 아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눈은 그리 간단한 신체기관이 아니다. 성적 충동을 불러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은 역시 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포르노나 라이브 쇼를 관람할 때의 급격한 성적 흥분을 보면 눈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눈은 ‘외부로 돌출한 뇌’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척추동물의 눈의 역사는 활유어라는 물고기에서 시작됐다. 이 물고기는 유리처럼 투명하게 생긴 몸을 통해서 외부상황의 변화를 뇌에서 직접 포착할 수 있었다.
그 후 진화의 과정에서 근조직의 발달로 몸이 차츰 불투명해지자 빛을 포착하는 감각기관으로서 먼저 뇌의 일부가 분리돼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분점을 차리게 된 것이 눈의 효시다.
화제를 돌려서 섹스를 생각해 보자. 오늘날 생식이란 차원을 벗어나서 쾌락의 섹스를 추구하게 된 인간의 성행동은 단지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의 결합만으로 그 부여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가 없다. 피부와 피부의 접촉, 뇌와 뇌의 접촉을 극대화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오르가즘을 맛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로 돌출된 뇌라는 눈과 눈의 접촉은 섹스에 있어서 불가결의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그처럼 중요한 감각기관이지만, 성교하는 도중에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쳐다보는 커플은 보기 어렵다. 눈을 마주 보는 것은, 피부를 접촉하기에 앞서 하는 유혹행위의 하나에 불과하다. 서로 쳐다보는 눈이 ‘오케이’라는 청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상대방의 매력있는 몸매를 보고 스스로 성적 흥분을 증폭시켜 나간다. 그것이 섹스에 있어서 눈의 역할이다.
인간의 눈은 색에 대한 포착능력과 시각이 뛰어나게 발달해 있다. 적색에서부터 자색에 이르기까지 2백50여 가지 색깔을 분별하고, 1만7천여 가지의 혼합색, 그리고 백색과 흑색 사이의 3백여 가지의 회색 식별능력을 가졌다. 이들을 모두 합쳐보면 인간이 분간할 수 있는 색상은 모두 5백만 종이나 된다.또한 촛불의 1천분의 1 밝기의 광원을 1km 떨어진 곳에서 분간하는 놀라운 시력을 동시에 보유했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색각과 시력을 겸비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성교하는 도중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뇌 속의 신경 에너지를 분산시킨 결과, 성감의 집합과 누적에 공백이 생겨나고, 그 공백이 크면 클수록 오르가즘 폭발의 사이즈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은 그 때까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미 충분하게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역할을 삼가야 오르가슴이 커지게 된다.
그런데 키스란 것은, 이제부터 쾌락의 세계에 푹 잠겨 들어가려 하는 신호, 프랑스 요리로 말하면, 오르되브르 같은 것이다. 여성이 눈을 감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눈으로 들어오는 여분의 시각정보를 차단하고 성감을 한층 높이려 하는 보조수단이다. 눈을 감으면 외계가 차단된다. 그만큼 인간의 눈은 너무 많은 정보를 뇌에 들여보낸다. 경주마의 경우도 눈의 측면을 차단함으로써 오로지 전방만 주시해 질주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의 하나다. 인간의 메이크 러브에서도 시각적 혼란을 차단함으로써 당연히 성감탐구에의 집중력이 배가되는 것은 물론이다. 성감을 높이기 위해서 여분의 감각정보가 대뇌피질에 도달하지 않도록 감각 신경로의 채널 조작이 행해지는 셈이다.
이처럼 어떤 것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정신활동에도 교묘한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고, 예로부터 성행위가 어둠 속에서 행해져 온 것도 섹스가 생식성교에서 유열성교로 방향전환을 이룩한 시점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눈은 보는 것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만지고, 눈으로 핥고, 눈으로 듣고, 눈으로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한 기능은 뇌리에 깊이 새겨진 과거의 경험과 그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교 중에 여성이 눈을 감으면 외부로부터의 섹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훼방될 뿐인 불필요한 정보들이 저지될 뿐만 아니라 과거의 관능적 쾌락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여성이 눈을 감는 것은 섹스의 청신호이고, 남성을 좀더 깊이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잠재적 의사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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