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젝시인러브 임기양 기자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한다. 여행? 어디로 갈 건데? 언제쯤? 막상 자고 올 건지, 왜 가자고 하는 지는 굳이

코치코치 캐묻지 않는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준비에 서두른다. 여행지 주변 코스? 지도? 먹을 거리? 잘 곳? 그런 건 남자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다.

 뭐 굳이 안 알고 가도 된다. 치약? 칫솔? 샴푸? 그런 건 숙박업소에 다 비치되어 있다.

 

이틀 전, 목욕탕 가서 묵은 때 좀 베껴둔다. 이틀 이상 되면 금세 때가 앉을 것이고, 너무 전날이면 목욕한 티 나서 살갗이 벌개질 것 같아 이틀로 정해둔다. 혹시나 해서 바디클렌저에 바디로션까지 한 세트로 구비해 둔다.

(하나의 향을 오래 유지하려면 같은 라인의 제품들을 쓰는 것이 좋단다)

잠시의 다이어트를 위해 일주일 전부터 저녁은 굶는다. 팽팽한 복근과 미끈한 다리(물론 바램이다)를 위해 매일매일 스트레칭도 잊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에게 슬쩍 정보도 구한다. 어떤 속옷이 무난하면서도 섹시해 보일 수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청순해 보이는 하얀 색이 좋다나 뭐라나. 애교스럽게 레이스가 나풀나풀 달린 걸로 구입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바로 겉옷 벗고 속옷만 걸친 채로 있을 수는 없는 일. 멋모르는 척 츄리닝을 가져갈까 싶었지만 참기로 한다. 아예 입고 갈 원피스 하나만 챙기기로 한다. 슬쩍 속살이 보이는 걸로. 남자의 상상을 자극케 하는 위장전술.

 

눈썹과 다리털, 심지어 코털까지 제모도 완벽히! 감쪽같은 쌩얼 위장을 위해 BB크림까지 챙겨 두었다. 콘돔까지 챙길까 했지만

막상 너무 티 내는 기분이다. 남자친구의 센스를 믿기로 한다.

, 드디어 여행 당일!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당일치기용 점심 도시락세트를 준비했다.

 룰루랄라~ 남자친구 입안에 김밥 넣어주며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표정을 지어준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뒷북 치는 한 마디.

 

"어머, 우리 자고 가는 거였어? 말을 하지~

숙소에서 단 둘이 술 한 잔에 취해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도 그녀의 계산된 뒷북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 내 털끝이라도 건드리면 자긴 짐승이야!

 

남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둔할 정도로 순진하게 구는 그녀를 감히 어떻게 건드릴 것인가!

 내가 참아야지, 내가, 내가 짐승이 아닌 이상 참아야지. 그리고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룻밤.

 남자의 가슴엔 참을 인 자 세 개 아니, 수십 개가 새겨진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 여자는 내내 뾰루퉁하다. 걸치고 있는 새 속옷을 쪽쪽 찢어 버리고 싶고,

 새로 산 바디샴푸와 로션을 시궁창에 부어버리고 싶다. 도시락 싼 게 아까워진다.

 

털끝도 안 건드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내숭과 계산으로 가득한 여자의 이율배반적인 마음, 남자들은 알랑가 모를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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