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씨(姓氏)가 점차적으로 확대 되면서 같은 성씨라 하더라도 계통(系統)이 달라 그 근본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웠으므로 동족(同族) 여부를 가리기 위해 등장하게 된 것이 본관(本貫)이다.
본관(本貫)이란 본(本), 관향(貫鄕), 관(貫)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관(貫)은 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옛날에는 엽전(葉錢)을 한 줄에 꿰어 묶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이 친족(親族)이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꿰일관(貫)』자를 썼다.
본관(本貫)은 또 최근까지만 해도 주민등록증이나 민원서류에 본적란이 있었듯이 본적(本籍)이란 뜻의 본관향적지(本貫鄕籍地)로 사용되었다. 본관은 대개 그 집안의 시조(始祖)나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出身地)나 혹은 정착세거지(定着世居地)를 근거로 호칭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특별히 나라의 공이 있거나 귀화인들에게 임금이 하사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본관수는 1930년 국세조사의 기록에 의하면 정씨(鄭氏)가 35본(本), 김씨(金氏) 85본, 이씨(李氏) 103본, 박씨(朴氏) 34본, 최씨(崔氏) 34본 등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같은 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성동본(同性同本)의 동족부락(同族部落)이 발달하였는데 이들은 가문(家門)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자치적으로 상호 협동하여 집안 일을 해결해 나가는 특이한 사회조직의 한 형태를 이루었다.
개인의 업적이나 명예가 결국은 가문(家門)에 부착되고 가문을 통해 계승된 다는 사실을 볼 때 한 개인의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는 그 가문 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신분을 높여 줄뿐만 아니라 가문에 대한 사명의식과 자부심을 고취 시켜 자아발전의 도구로 여겨졌다.
성씨(姓氏)와 본관(本貫)
가. 성씨(姓氏)
우리나라 민족은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각자 성씨(姓氏)를 가지고 성씨별로 씨족의 역사와 함께 서로 융화와 협동을 하며 살아왔다. 조상숭배와 애족사상이 강한 우리나라는 성씨를 통하여 이어 내려오는 가통(家統)을 더듬어 선조의 얼과 체취를 느끼는 동시에 가문에 대한 강한 긍지를 느끼고 있다.
성씨의 기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중국의 성씨제도의 영향을 받아 오늘 날과 같은 중국식 성씨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6세기경인 신라 법흥왕~진흥왕 때이다. 신라 왕실(王室)에서 김씨(金氏) 성을 사용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며, 삼국(신라, 백제, 고구려)시대부터 국가의 공신들에게 거주지역이나 강, 산의 명칭을 따라 성을 하사하면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식 성과 이름이 정착된 시기는 고려 시대부터이며, 고려 태조 왕건이 개국공신이나 투항자들에게 대대적으로 사성(賜姓)을 하여 귀족이나 관료들이 모두 성(姓)을 쓰게 되었는데 성씨가 보편화 된 것은 과거제도가 발달한 고려 문종 이후부터이다.
성씨(姓氏)에는 박(朴), 석(石), 김(金)씨와 같은 토착성씨(土着 姓氏),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살면서 자기가 살던 나라(중국, 일본, 몽고 등)에서 사용하던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는 귀화 성씨(歸化 姓氏), 공신이나 귀화인에게 국왕이 하사한 사성씨(賜姓氏)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국식 한자 성씨는 왕실, 귀족, 관료, 양민, 천민의 순서로 보급되었는데 삼국시대 성씨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 : 해, 을, 송, 주, 마, 창, 동, 연, 을지 등
백 제 : 사, 연, 협, 진, 국, 목, 백 등
신 라 : 박, 석, 김, 이, 최, 정, 손, 설, 배 등
이러한 유래로 고려 초에 확립된 성씨 체계는 점차 확대되자 같은 성씨라도 계통이 달라 자기 성씨와 타성이 혼돈 되는 것을 피하고 체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씨족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하여 성씨의 본관(本貫)과 족보(族譜)가 등장하게 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본관이 분관(分貫)되고 문중이 분파(分派)되어 다양해졌다.
성씨가 보급된 뒤에도 성이 없던 천민계층은 개별적인 신분 해방과 신분 상승으로 극히 일부만 성씨를 얻었지만 이들 모두가 성을 갖게 된 것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종래의 엄격하였던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갑오경장(1894년)을 거쳐 1908년에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창씨(創氏)가 법제화(法制化)된 후부터이다.
나. 본관(本貫)
본관(本貫)의 체계가 확정된 시기는 고려 초이며, 그 이전에는 출신지가 신분의 표시로서 성의 구실을 하였다. 본관은 시조의 출신지 또는 씨족이 대대로 살아온 고장을 가리키며, 이것은 다른 종족의 같은 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쓰이게 되었다.
본관은 본(本), 관향(貫鄕), 관적(貫籍) 또는 관(貫)이라고도 하며, 원래 관(貫)은 돈을 말하는 것으로서 돈을 한 줄 꿰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이 친족이란 서로 관련성이 있다는 뜻으로서 더 나아가 본적(本籍)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각 성씨의 족보에 기록된 본관의 연혁을 보면 국가의 공훈(功勳)으로 ○○백(伯), ○○군(君)의 봉군(封君)을 받은 지명을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정한 가문이 많다. 어느 가문은 시조로부터 누대에 걸쳐 살아왔으므로 그 지명을 따라 후손들이 본관으로 하는 가문도 있다. 동성(同姓) 만으로는 동족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동성이본(同姓異本)은 동족 중에서 중시조대에 분적되어 각자 본관을 달리 한 경우를 말하며, 이성동본(異姓同本)은 원래 동성동본(同姓同本)이었는데 사성(賜姓) 또는 개성(改姓) 등의 특수 사정에 의하여 성씨가 변한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성씨는 같은 성이라도 여러 본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관은 조상을 하나로 하는 혈통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민간 풍속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동성동본(同姓同本)일 경우는 절대로 혼인을 할 수 없는 전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다. 성씨와 본관의 관계
성씨와 본관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1) 동조 동본 동성(同祖同本同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관, 같은 성을 사용하는 경우로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
2) 동조 동본 이성(同祖同本異姓)
본래는 같은 시조와 본관이 같았지만 성씨를 하사 받거나 그 밖의 이유로 성이 달라진 경우이다. 예를 들면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金海許氏) 가 있다.
3) 동조 이본 동성(同祖異本同姓)
같은 시조의 후손이면서 본관이 다르고 성은 같은 경우다. 예를 들면 파평 윤씨의 시조 신달(莘達)의 후손인 남원(南原) 윤씨, 함안(咸安) 윤씨, 덕산(德山) 윤씨, 신령(新寧) 윤씨 등이 있다.
4) 동조 이본 이성(同祖異本異姓)
본래 동족이지만 성씨와 본관을 다르게 쓰고 있는 경우다. 김해 김씨와 양천 허씨, 문화 류씨와 연안(延安)차씨 등이 그 예이다.
5) 이조 동본 동성(異祖同本同姓)
시조가 다르면서 본관과 성씨가 같은 경우이다. 예를 들면 수로왕계의 김해 김씨와 일본계로 임진왜란 때 귀화한 김충선(金忠善)계 김해 김씨가 있고,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시조가 다른 두 홍씨가 있어 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으로 구분하고 있다.
6) 이조 동본 이성(異祖同本異姓)
시조와 성씨가 다르지만 시조의 발상지가 같아서 본이 서로 같은 경우이다. 예를 들면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경주 손씨(孫氏), 청주 이씨와 청주 한씨 등이 있다.
7) 이조 이본 동성(異祖異本同姓)
시조와 본관이 다르나 성씨가 같은 경우이다. 예를 들면 파평 윤씨와 해평 윤씨, 안동 장씨와 덕수 장씨, 광주 이씨(光州李氏)와 연안 이씨 등이 있다. 이족이라면 성과 본관을 다르게 쓰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한 지방에 여러 성씨가 연고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현상이 생긴 것이다.
본관과 외래성씨의 경우
우리나라의 성씨는 신라9성과 고구려 백제의 16, 제주도의 3성등 그 근거가 짐작되는 재래성씨가 있는 가하면 대개 중국이나 일부 여진이나 거란 말갈 돌궐및 아라비아 인도 월남 태국 유구 일본등지에서 건너온 조상이 있어 이들의 성시는 모두 이땅의 지명을 본관으로 사용하기는 하여도 외해 성씨임을 자처하는 예개 많이 있다.
그리고 절대강국들과 마주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파란 만장한 전란의 역사를 갖고 있는우리나라는 실제에 있어서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을 자처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세계 어느나라 민족이라 하더라도 순수한 혈족으로 이어 올수는 없는 것이 유전학상 절대적 원리인 만큼 그런 수순혈통만으로 수만년을 이어 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하므로 순수 혈통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문화와 생활이 동일한 권내에서 역사성을 갖는 다면 이는 단일 민족이라는 일반적 정의에 합당하고 대개는 이러헌 논리에 적응 하며 우리민족도 이러한 이론적 근거에서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으며 단일 민족 단일국가의 명예를 지키는길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외래한 성씨들이 대개는 그 이주해온 지방에 가까운 곳의 본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 있는데 황해도나 충청남도 해안 지역은 거의 중국을, 남해안이나 북방지역의 본관은 북방계열의 외래성씨로 본다면 큰 착오는 없을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일부 의심되는 성씨중에 지나치게 견강부회한 나머지 내륙지방에 본관을 정한 경우도 있지만 그 조상�래� 살피면 대개는 거란이나 여진족의 피가 흐르는 것을 숨길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예외가 있다믐 말을 한것이다.
이제 본관(本貫)과 관향(貫鄕)과 고향(故鄕)에 대해 알아보자.
☞ 본관은 시조 할아버지가 성씨(姓氏)를 가지고 자손을 퍼뜨리게한 이를테면 창업지(創業地)를 말한다.
"김해김씨"이면 김해가 그들의 본관이다.
최초의 원산지 표시로서 지금도 가문간의 편지를 주고받을때는 모관후인(某貫後人)이라며 반드시 본관을 밝힌다. (예 : 김해김씨의 경우. "金海後人"이라고 쓴다)
앞으로 가족등록법이 종래 적법을 올라타고 앉으면 일부이기는 하지만 별도의 창본창성이 많이 나타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 종래 호적에 의존해 오던 혈통주의에 대한 문제는 각자 족보라는 자율적인 확인 방법을 통하여 유지 될것이므로 오히려 더 강력한 혈통주위 풍조가 다시 부흥되리는 전망도 해 본다.
☞ 관향은 윗대 조상들이 한 곳에서 누대에 걸쳐 살아내려온 동네를 말한다.
ㅡ 농사짓는것 보다 월급쟁이벌이가 낫다하여 떠난 고향동네
ㅡ 7대조 할아버지가 그 동네로 이사온 이래 200년 세월
내가 그곳에서 태어난것은 말할것도 없고 큰집도...당숙네도 있고, 선산(先山)도 있으며 시제(時祭)도 거기서 뫼신다.
관향은 어쩌면 본관보다 더한 살아온 내력으로서의 고향이다.
이 시대의 부모들은 먹고살기 위해 비록 고향은 떠나왔지만 자식들이 아버지의 고향을 낯선 곳으로 여기는데 모두 가슴이 무겁다.
☞ 그 다음으로서 고향.... !
듣기만해도 가슴설레는 이 말은 아련한 추억으로서 차라리 마음이다.
술래잡기,잣치기,연날리기,썰매타기...
수박서리,메뚜기잡기,초가지붕끝의 고드름따먹기...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 본 자연 .....그 질박한 맑음.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를 가지게 만들어준 도덕.
꾸미지 않은 천연색.
수구초심(首邱初心)... !
여우도 죽을때는 제 태어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죽는다던가...
죽는날까지 그리워 못내 잊지못할 고향 ㅡ 제 태어난 곳.
그 화두를 지니고있는 사람.....
그에게서는 언제나 사람냄새가 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 !
그대들의 마음의 고향《心鄕》은 어디입니까...? 이상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취합하였음
한마디로 고향은 종중과 본관과 같은 어머니의 대명사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줄 알고 있다면 모든 사람의 근본 즉 뿌리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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