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담] - 菁父毒果
충주에 있는 어떤 산사를 지키는 중이 있었다. 그 중은 물건을 탐하고도 몹시 인색하였다.
한 사미(沙彌)를 길렀으나 남은 대궁도 먹이지 않았다. 그 중은 일찌기 깊은 산중에서 시간을 알아야겠다는 구실로써 닭 몇 마리를 기르면서 달걀을 삶아 놓고는 사미가 잠이 깊이 든 뒤에 혼자서 먹는 것이었다.
사미는 거짓 모르는 듯이, "스님께서 잡수시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즉, "무우 뿌리지 뭐야." 하고 답하였다.
어느 날 주지가 잠을 깨어 사미를 부르면서, "밤이 어떻게 되었어?" 하고 물었다. 때마침 새벽 닭이 홰를 치면서 <꼬끼오>하고는 우는 것이었다. 사미는, "이 밤이 벌써 깊어서 무우 뿌리 아버지가 울었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 어느 날 과수원 감이 붉게 익었다. 주지는 감을 따서 광주리 속에 간직하여 들보 위에 숨겨 두고 목이 마르면 가만히 빨곤 하는 것이었다. 사미는 또 그게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주지는, "이건 독한 과실인데, 아이들이 먹으면 혀가 타서 죽은 것이야." 하고 설명을 하였다.
어느 날, 일이 있어서 밖을 나갈 제 사미로 하여금 방을 지키게 하였다. 사미는 댓가지로써 들보 위의 감 광주리를 낚아 내려서 멋대로 삼키고는 차를 가는 맷돌인 차년으로써 꿀단지를 두들겨 깨친 뒤에 나무 위에 올라앉아서 주지가 돌아 오기를 기다렸다.
주지가 급기야 돌아와 보니, 꿀물이 방에 가득 차고 감 광주리는 땅 위에 떨어져 있었다. 주지는 크게 노하여 막대를 메고 나무 밑에 이르러서,
"빨리 내려오려무나." 하고 거듭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사미는, "소자 불민하여 마침 차년을 옮기다가 잘못하여 꿀단지를 깨뜨리고는 황공하여 죽기를 결심하여 목을 달려니 노끈이 없고, 목을 찌르려니 칼이 없으므로 온 광주리의 독과를 다 삼켰으나, 완악(頑惡)한 이 목숨이 끊기지를 않기에 이 나무 위로 올라 한번 죽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주지는 웃으면서 놓아 주었다.
-촌담해이(村談解滯)에서-
[한국의 야담] - 繫頸住持
금산사(金山寺)에는 여러 여중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화라고 하는 여중은 음탕하고도 교묘하기 짝이 없어서 여러 차례 사람을 매혹시켰었다.
주지 혜능이 이에 분개하여 모든 승려를 모아 놓고,
『우리는 의당히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할 것이니 어찌 한 아녀자에게 더럽힌 바가 되겠는가.』 하고 인화를 쫓아 버리고는 다만 남승으로 하여금 음식과 의복을 맡게 하여 도장이 맑고 정숙하게 되었다.
어느 날 혜능이 절 문을 나서 마침 인화의 집앞을 지나쳤었다. 인화가 울타리 틈으로 엿보고는, 『이 중놈이야말로 낚기가 쉽겠구나.』 하고는 장담을 하는 것이었다.
뭇 중은 그의 말을 듣고서, 『네가 만일에 이 스님을 낚는다면 이 절의 전토(全土) 일체(一切)를 너에게 주렷다.』 하였다.
인화는, 『그러지. 내 의당히 이 중놈의 목을 절 앞 커다란 나무 밑에 매어달 것이니, 그대들은 미리 와서 기다리려무나.』 하고는 곧장 머리를 땋고 효경(孝經)을 옆에 끼고 혜능을 찾았었다.
혜능은 그의 얼굴이 예쁨을 보고서, 『넌 누구 집 아들이냐?』 하고 물었었다.
인화는, 『저는 아무 곳에 살고 있는 선비집 아들이온대, 전임 주지께 글을 배웠더니 폐업한 지 벌써 오래 되었으므로 감히 와서 뵙는 것이랍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혜능은 인화로 하여금 그의 앞에서 글을 읽게 하였을 제 경문의 구두 떼는 것이 몹시 분명하고 목청이 청랑하였으므로 혜능은, 『가히 가르칠 수 있구나.』 하여 크게 기뻐하고는 이내 유숙을 시켰었다.
인화는 밤 들어서 거짓으로 섬어(晨語)를 짓는 것이었다. 혜능이 불러 자기의 잠자리로 끌어들이고 보니, 곧 아리따운 한 여인이었다.
혜능은, 『에이크 이게 웬일이야.』 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인화는, 『나는 곧 인화입니다. 사내와 계집 사이의 커다란 정욕은 곧 천지가 물건을 점지하신 참된 마음이었으므로 옛날 아난(阿難)은 마등가녀(摩登迦女)란 음녀에게 혼미(혼미(昏迷)하였고, 나한(羅漢)은 운간(雲間)에 떨어졌거늘, 하물며 스님은 그 두 분에게 미치지 못하겠습니까.』 하여 혜능을 매혹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혜능은, 『애석도 하구나. 이제 나의 법계로 이룩된 몸을 헐게 되었구나.』 하고는 곧 서로 정교를 통하게 되었을 제, 인화는 거짓 배가 아픈 시늉을 하여 그 소리가 문 밖으로 나는 것이었다.
혜능은 남들이 알까 보아 두려워하여 다만 제입으로써 인화의 입에다 맞추어 소리를 방지할 것을 꾀하였다.
인화는, 『이제는 병이 급하니, 밤이 어둡거든 나를 업어서 절 문 밖 구목나무 밑에다 버려 둔다면 밝은 아침에 엉금엉금 기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애원하는 것 이었다.
혜능은 그의 말과 같이 하여 인화를 등에다 업고 인화로 하여금 두 손을 뽑아서 그의 목덜미를 껴안게 하고 절문을 나가는 그 찰나였다.
인화는 짐짓 두 손의 힘이 풀어진 듯이 하여 몸을 땅 위에 떨어뜨리고는, 『아이구, 매는 부르고 등은 높아서 아무리 손으로 잡아도 아니 되니 허리띠를 풀어 서 스님 목덜미 앞에다 두르고 두 손으로써 잡는다면 떨어지지 아니할듯합니다.』 하고 통성을 내는 것이었다.
혜능은 또 그의 말하는 대로 하여 구목나무 밑까지 이르니, 뭇 중은 이미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혜능이 창황망조(蒼黃罔措)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에 벌떡 일어나서 허리띠를 잡아당겨 혜능의 목을 졸라매어 이끌고는 뭇 중의 앞을 다가서면서, 『이것이 이 중놈의 목을 매어단 것이 아니고 뭐냐.』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뭇 중은 이를 보고서 크게 놀라서 그들의 전토를 인화에게 넘겨 주었었다.
-촌담해이(村談解滯)에서-
[한국의 야담] - 牧丹奪財
평양에 한 기생이 있었다. 재주와 아름다움의 경적에 빼어났었다. 향생 이서방이란 사람이 나라의 지인(知人)이 되어 취임할 새, 처가집이 그의 노자와 옷을 화려하게 차려주어, 도하(都下)에 와서 머물게 되었다.
마침 기생 사는 집과 서로 가깝거늘, 기생이 그의 가진 물건이 많은 것을 보고, 이를 낚기 위하여 이서방 있는 곳에 와서 일부러 놀라 가로되, "높으신 어른께서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하며 곧 돌아가거늘, 이서방이 가만히 사모하더니, 저녁에 기생이 이서방을 위로해 가로되,
"꽃다운 나이에 객지에 나서서 시러금 심심치 않으십니까? 첩의 지아비가 멀리 싸움터에 나가 여러 해 돌아오지 않으니, 속담에 이르기를 과부가 마땅히 홀아비를 안다 하였은즉,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오." 하며, 교태 어린 말로 덤비니, 드디어 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서방이 가진 물건을 다 기생에게 쓰면서 함께 있게 되었는데 기생이 매일 아침에 식모를 불러 귀에다 대고 가로되, "밥반찬을 맛있게 하라." 하거늘, 이서방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음에 반겨, 있는 자물쇠 꾸러미를 다 맡겼다.
하루는 기생이 문들 시무룩해서 즐기지 않을 새, 이서방이 위로해 가로되, "정분이 점점 떠가느뇨? 의식이 모자라느뇨?"
"어느 관리는 아무 기생을 사랑하여 금비녀와 비단 옷을 해 주었다 하니, 그 사람이야말로 참말로 기생서방의 자격이 있다 하겠소이다."
"이는 과히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의 하고자는 바를 좇으리라." 하고 패물을 사주니,
"이렇게 함께 사는 처지에 무엇을 그리 함부로 낭비하시오." "재물은 나의 재물이니 무슨 관계리?" 하며 이서방이 노해 말하는데, 또한 장삿군이 값진 비단을 팔러 왔으며, 이서방이 그 나머지 재물을 가지고 사려고 한즉, 기생이 일부러 제지하여 가로되,
"곱기는 곱지만 입는 데 완급이 잇느니, 어쩌리요."
이서방이 꾸짖어 가로되, "내가 있으니 걱정이 없느니라."
기생이 일보는 계집으로 더불어 비단을 가지고 밤을 타서 도망했거늘, 이서방이 등불을 켜고 홀로 앉아 잠못이루며, 새벽에 이르러 해가 높도록 돌아오지 않는지라. 조반을 짖고자 궤짝을 연즉, 한 푼의 돈도 남겨 두지 않았다.
이에 이서방이 분김에 스스로 죽고자 해 봤으나 이웃 노파가 와서 가로되, "이는 기생집의 보통 있는 일이니, 그대는 그것을 실로 모르느뇨? 매일 아침에 부엌데기에게 한 은밀한 얘기는 가만히 재물을 뺏고자 함이었고 다른 사람을 칭찬한 것은 낭군으로 하여금 격분케 해서 효과를 보고자 함이었고, 그 나중에 비단을 와서 팔게 한 것은, 밀통했던 간부로 더불어 나머지 재물을 뺏고자 함이라."
한즉, 이서방이 심히 분해 가로되,
"만약 그 요귀를 만나기만 하면 한 몽둥이로 때려죽이어 꺼꾸러뜨린 다음 옷과 버선 을 벗기리라." 하며, 드디어 교방(敎坊) 길가를 엿보던 중 기생이 그 동무 수십 명을 이끌고 떠들면서 지나가는지라. 이서방이 막대기를 가지고 앞으로 뛰어나가 가로되
"요귀 요귀여, 네가 비록 창녀이긴 하나, 어찌 차마 이와 같은고? 나의 금비녀와 비단 등속을 돌려 보내라!"
한즉 기생이 박장대소하여 가로되,
"여러 기생들은 와서 이 어리석은 놈을 보라. 어떤 시러배아놈들이 기생에게 준 물건을 돌려달란 놈이 있더냐." 여러 기생들이 앞을 다투어 그 모양을 보고자 하되, 이서방이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 군중 가운데 숨어 피해 달아나는지라. 이서방이 의지할 데 없이 길가에서 얻어먹더니, 비로소 처가에 이르른즉, 장모가 노하여 문을 닫고 쫓으니,이서방이 능이 스스로 살 수 없어 드디어 동네 걸식하거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지 않은 자 없었다.
-촌담해이(村談解滯)에서-
[한국의 야담] - 險漢逞憾
서울사람 하나가 성품이 교활하여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몹쓸 놈이라 했다. 그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날 길에서 배(梨)장수를 만났다.
『여보 몇 개만 먹어 봅시다.』 하고 청했으나 워낙 인색한 배 장수라 듣지 아니 하였다.
『내 너로 하여금 앙갚음을 할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배 장수보다 한 마장쯤 먼저 가서 길가 논 가운데 남녀 수십명이 모를 심는 것을 보고는 그 가운데 제일 나이 적고 아름다운 여인을 불러 가로되,
『아씨가 제일 어여쁘니 오늘 밤 함께 자 보는 것이 어떠냐?』 하고 희롱 하니 여러 사람이 이 소리를 듣고 크게 노하여,
『어떤 미친 놈이 와서 희롱하느냐?』 하고 좆아 오거늘, 서울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급히 언덕을 뛰어넘어 그 아래에 각서 앉아 한 손을 쳐들며 크게 소리치며 가로되,
『배(梨)를 지고 오는 형님! 빨리 오시오. 빨리 오시오!』
이 때 배장수가 마침 논밭 근처에 당도하니, 모심던 여러 수십 명이 달려들어 형님이란 소리를 듣고 배 장수의 덜미를 끌며,
『넌 저놈의 형인 모양인데, 네 아우의 죄는 네가 마땅히 당해야 할 것이다. 』 하며 주먹과 발길이 우박처럼 쳐왔다.
몸에 성한 곳이 없고 옷은 찢어지고 배는 깨지고 흩어졌다. 배장수가 불의의 봉변을 당하고 애걸하면서 가로되,
『저 언덕 아래에 있는 놈은 본시 내 동생이 아니오. 아까 길가에서 그 놈이 배를 달라기에 주지 않았더니, 이에 심술을 부려 여러분을 속여 나를 괴롭히니 여러분은 양해하고 나를 살려 달라』
여럿이 그럴싸 해서 매를 그치니 배장수는 겨우 일어나 배를 수습하여 가니, 서울 사람이 언덕 아래에 앉아 있다가 길에서 배장수의 낭패하여 오는 모습을 보고 가로되,
『그대가 배 두어 개를 아끼더니 이제 어떤고?』
배 장수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말이 없었다. 이 때 또 한 역졸이 흰 말을 타고 지나가거늘 서울 사람이 말을 붙잡고 청하기를,
『내가 여러 날 길을 걸어 발이 콩멍석이요, 다리가 아파 죽겠으니, 요다음 주막까지 잠깐 말을 빌림이 어떠한 가?』
『너는 어떤 위인인데 말을 타고자 하느뇨? 나도 또한 다리가 아픈즉 다시는 그 따위 미친 수작 말라』
『네가 감히 허락치 않으니 내 마땅히 너로 하여금 봉변케 하리라.』 하고 눈을 부릅뜨고 말하니,
『시러배아들놈!』
하고 웃고 가거늘 서울 사람이 그 뒤를 따라 역졸이 주막에 들어간 것을 보고, 그 때 마침 주인 여자가 방 가운데서 바느질하는 것을 보고 창 밖에 서서 가로되
『낭자(娘子) 낭자여, 내 마땅히 밤 깊은 후에 와서 한 판 하리니, 이 창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라. 나로 말하면 아까 여기 흰 말을 타고 와서 건너 주막에 와서 자고자 하던 사람이라.』 하니,
여인이 크게 놀라고 노하여 곧 그 말을 남편에게 고하니, 남편이 대로하여 그 아들과 동생들을 거느리고 주막으로 달려들어, 아까 흰 말을 타고 온 사람을 찾으니, 역졸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응한 즉, 세 사람이 죄를 꾸짖으며 어지러히 후려치니, 온 몸이 중상이라 주막 주인이 구해내며,
『이 사람은 저녁에 우리 집에 들어온 후 아직까지 창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잠만 자고 있었으며 천만 애매하니 이는 반드시 그릇됨이라』
여러 손님의 말이 또한 그와 같았으므로, 반신 반의하여 간신히 풀어 주니, 이튿날 아침에 서울 사람이 먼저 길을 떠나서 몇 리 밖에 가서 길가에 앉았는데, 그 때 역졸이 기운 없이 말을 타고 오거늘 서울 사람이,
『네가 어제 나에게 말을 빌리지 않더니 지난밤 액땜이 과연 어떠하뇨? 오늘에 또 만약 말을 빌리지 않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또 한번 당하게 하리라.』
하니 역졸이 크게 두려워 말에서 내려 잘못했음을 빌며, 하루 동안 말을 빌려 주었다. -교수잡사(攪睡雜史)에서-
[한국의 야담] - 鬼棒變怪
어떤 시골에 한 과부가 살았는데 그의 소원은 도깨비와 한번 친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만일에 도깨비와 친한다면 무엇이든지 소원대로 갖다 준다. 그러나 도깨비의 비위를 한번 거슬리기만 하면 논밭의 곡식은 꺼꾸로 심겨지고 솥뚜껑이 솥안에도 들어가고 밤이되면 집안에는 모래나 돌이 날아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변괴가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라도 쉽게 도깨비와 친해질 수도 없고 우연한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과부도 우연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과부가 홀로 방에 앉아 있으니, 도깨비가 이상한 물건을 하나 방안에 던져 주고 갔다. 깜짝 놀라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것은 큼직한 양물(陽物)이었다.
과부는 내심으로,『도깨비라 나를 동정하는구나.』생각하며
그것을 손에 쥐고 들여다보며,'이것은 대체 무엇에 쓰는 것일까?'
혼잣말로 지껄이니 그것은 갑자기 건장한 총각으로 변하더니 불문곡직하고 고부에게 달려들어 겁간을 하는 것이었다.
일이 다 끝나니, 총각은 다시 한 개의 양물로 뒤돌아 왔다. 과부는 이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일변 두렵기도 하지만 그 신기한 조화에 놀랍고도 기뻤다.
그 후부터는 생각날 때마다 양물을 잡고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하고 장롱속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가 되면 그놈을 끄집어 내어 쥐고,
'이것은 대체 무엇에 쓰는 것일까?'하면
곧 총각으로 변하여 그 소회를 풀어주니 그 이후부터 과부는 비로소 새 광명을 찾았고 세상에 사는 기쁨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언제나 회색이 얼굴에 넘쳐 흘렀다.
하루는 멀리 볼일이 생겨 이웃 과부에게 집을 부탁하고 떠났다. 이웃 과부는 별 할일도 없고 그 과부의 살림살이나 구경하자고 과부집에 와서 이리 저리 뒤져 보았다. 마침 장롱을 열어 보니, 이상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흡사 양물 같았다.
『아하! 이놈을 가지고 남 모르는 재미를 보는구나.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는 다만 보는 것뿐일 텐데 무슨 재미가 있을까? 오히려 속만 더 태울 뿐이지.』
그것을 끄집어 내어 손에 쥐고 이리 저리 뒤지면서 고루 보았다. 암만 보아도 그놈으로서는 별다른 재미를 볼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이것은 대체 무엇에 쓰는 것일까?』
말이 미처 입가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그놈은 갑자기 한 건장한 총각으로 변하여 벌벌 떨고 있는 과부를 다짜고짜로 끄집어 엎어서 행간을 하더니 일이 끝나자 총각은 간데 온데 없고 먼저 그 양물만 있었다.
과부는 모처럼 당하는 일이라 즐거워야 하겠으나 즐거움도 간곳 없고 다만 두렵고 놀라울 뿐이었다. 부랴부랴 장롱속에 집어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가고 제 정신이 차려지니 그놈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간절했다.
저녁밥을 짓는 장작개비도 그놈만 같아 보이고 방구석에 돌아다니는 다듬이방망이도 그놈만 같아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연신 그놈만이 눈에 어른거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지금 가서 다시 한번 해볼까? 그 총각놈이 또 나타날까?』
하룻밤을 온통 뜬눈으로 세웠다. 아침이 되자 미친듯이 달려가 장롱문을 열고 그놈을 끄집어 내어 들로 어제와 같은 말을 하니 그 총각놈이 나타나서 또한 행간을 하는데 그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놈을 내 것으로 만들까?』
『달라고 한다.』
『주지 않지.』
『그럼 같이 가지고 놀자고 한다.』
『그것도 안될 말.』
『몰래 가지고 가 버려?』
『이내 달려와서 야단일걸.』
『어쨋던 올 때까지 실컷 재미나 보고 하회를 기다리자.』
이후로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이 있는대로 생각나는대로 달려가서 재미를 보았다.
며칠이 지나서 과부는 돌아왔다. 두 과부 사이에서는 그간의 이야기가 오고가고 하다가 종내는 그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주인 과부는 펄펄 뛰었다.
며칠이 지나니, 이웃 과부는 그놈의 생각이 또한 간절하여져서 주인과부한테 가서 하룻밤만 빌려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도저히 들어주지 않는다. 이웃 과부는 성이 부시시 일어났다.
'대체 이년은 그것을 한번 빌려주는데 그놈이 닳느냐 어디로 날라가느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집어먹어 삼키느냐?'
내심 괘씸하였다.
'어디 두고 보자.'
두 과부는 좋지 않은 말이 몇 마디 오고가더니 싸움이 벌어졌다. 아무리 말려도 온통 듣지 않는다. 이 소문은 마침내 그 고을의 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디 세상에 그럴 리라 있을라구. 귀신이란 원래 심신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고 도깨비란 정신이 부설하여 헛것이 보이는 것인데.』
원은 극구 부인하고 아전배는 사실이 그렇다고 우겨대었다. 마침내 원은 그 과부를 물러 그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과부가 갖다 바치는 그 물건을 원은 손에 쥐고 이리 저리 보았다. 모양은 틀림없이 소문과 같이 양물 같았으나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으며, 또한 그것이 과연 그러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이것은 대체 무엇에 쓰는 것일까?』
원은 혼자 중얼거렸다. 원의 말이 채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 양물은 총각으로 변하여 다짜고짜 사모관대를 한 동헌에 높이 앉은 원에게 달려들어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행간을 하고는 다시 원래의 양물로 변하였다.
원은 놀랍고 창피하였느나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사실을 자세히 써 장계(狀啓)와 함께 감영으로 보냈다.
이 소문은 마침내 입에서 입으로 펴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감영에 가지고 왔다. 하나 귀결이 어찌될까? 그 소문이 사실인가? 하여 그 물건을 먼 빛으로나마 한번 보려고 감영근처에는 구경꾼으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감사도 원의 장계와 그 물건을 보니 이상하기는 하나,
『어디 세상에 그럴 리가 있을라구? 원이 미쳤거나 하였겠지.』
하고 무심히 그 물건을 들여다 보니 흡사 양물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설마 그럴랴구?
『그럼 이것은 대체 무엇에 쓰는 것일까?』
감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더벅머리 총각놈이 나타나서는 사람들이야 있건 말건 다짜고짜 감사를 엎어놓고 행간을 하더니 일이 끝나자 본대의 양물로 변하였다.
감사는 치사하고 괘씸하여 분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 요물을 불에 태워 버리자.』
생각하고 감영뜰에 모닥불을 지피게 하여 그 속에 던져 넣었으나, 타지도 녹지도 않았다. 다시 끄집어 내어 펄펄 끓는 물에 넣었으나 삶겨지지도 않고 익지도 않았다.
감사는 하는 수 없이 모든 것을 단념했다.
『조물주는 불쌍한 과부를 위해서 이런 것을 만들었는가보다.』
생각하고 그것을 과부에게 다시 돌려주고 말았다.
-촌담해이(村談解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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