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변태]
▶오늘도 이 버스는 콩나물 시루다. 늘 그렇듯이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등 뒤의 중년남자가 자꾸 몸을 기댄다. 나만한 딸이 있을 지긋한 나인데 저러고 싶을까? 해도 너무한다.
* 중년남자 ▶역시 서울의 버스는 정말 좋다.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매일 나의 회춘을 돕는다. 늘 하던데로 신문에 손을 숨기고 앞의아가씨 몸에 슬적 기대봤다 풍겨오는 향수냄새가 나의 말초신경까지 짜릿하게 한다. 넌 죽었다... 흐~
* 아가씨 ▶내가 맡아도 이 프랑스제 향수는 향이 정말 그윽하다. 중년남자가 점점 몸을 더 압박해온다. 얼핏보니 흰머리가 듬성듬성 있었다. 간밤에 소화가 잘 안돼서 그런지 자꾸만 가스가 샌다. 중년남자의 코가 썩겠구나.
* 중년남자 ▶앞의 아가씨의 향수 냄새가 너무 죽여준다. 그런데 어디서 똥을 푸는지 똥냄새도 난다. 아가씨가 괴롭겠구나. 신문으로 가린 손을 아가씨 둔부에 대봤다. 와... 뜨듯한 게 증말 좋구나. 입이 안다물어진다.
* 버스기사 ▶오늘도 어떤 놈인지 년인지 똥을 안누구 왔나부다. 방독면이라도 하나 장만해야지 이러다 코가 문들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운전을 때려치던지 해야지. 갑자기 편두통까지 치민다.
* 아가씨 ▶중년남자의 손이 느껴졌다. 점점 더 노골적이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오른발을 있는데로 쳐들었다. 그리곤 중년남자의 발등을 찍었다. 있는 힘껏!!! 무지 아플 꺼다.
* 중년남자 ▶아가씨가 내 발등을 찍으려는 걸 눈치채고 다리를 피했다. 한 두번 겪나? 이 정도면 성추행의 명인이라고 불리어도 흠이 없으리라. 옆에 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괴성을 지른다. 아가씨가 잘못 찍은 거다.
* 얼결에 찍힌 대학생 ▶간밤에도 나를 성추행범으로 알고 어떤 여자가 내 발을 찍었다. 밤새 부어오른 발등을 찜질하니 겨우 가라앉은 듯 했는데. 젠장, 그런데 오늘도 재수 없게 찍힌데 또 찍힌 것이다. 아가씨에게 마구 화를 내며 따졌더니 무안해하여 어쩔 줄 몰라한다.
* 아가씨 ▶잘못 찍었다. 간밤에도 어떤 학생의 발등을 잘못 찍었는데. 요즘엔 순발력이 딸린다. 중년남자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 손으로 둔부를 더듬었다.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 핸드백 속의 전기 충격기를 꺼냈다.
* 중년남자 ▶아...정말 황홀하다. 이 맛에 사람들이 이 짓 하나보다. 아가씨가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냈다. 바늘이나 압정일 듯 싶다. 재빨리 학생의 손을 그 여자의 둔부에 댔다.
* 아가씨 ▶일본 여행길에 장만한 2만 볼트의 초강력 전자 충격기를 내 둔부에 전세 낸 손에다 댔다. 그런데 왠걸... 아까 발등 찍힌 그 학생이 기절했다. 이해가 안 간다. 아무래도 중년남자는 프로 인가보다. 힘든 싸움이 되겠다.
* 아까 그 학생 ▶저승사자가 눈앞에 왔다 갔다 했다. 옆의 중년남자가 나를 성 추행범으로 몰았다. 억울했다. 하지만 내가 반박할 물증도 없었다. 그렇게 내 뇌 세포는 수만 마리가 감전되어 죽었다. 사람들이 삿대질하며 수근덕거린다.
* 중년남자 ▶정말 준비성이 많은 아가씨다. 전자 충격기까지 준비하다니.. 얕볼 수 없는 상대임이 틀림없다. 내 친구도 쥐덫에 당해 아직도 통원치료중인데..조심해야겠다. 하지만 또다시 아가씨의 둔부에 손을 댔다. 이젠 지도 어쩌지 못하겠지..
* 아가씨 ▶정말 꾼 한테 제대로 걸렸다.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면서 중년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재수 없게 생겼다.
* 중년남자 ▶아가씨가 내렸다. 아 좋았었는데 안타까웠다. 아가씨가 내리면서 나를 꼴아 보았다. 지가 꼴아 보면 어쩔 건가. 약을 올리는 투로 입술을 내밀며 윙크를 했다.
* 버스기사 ▶아까부터 중년남자가 아가씨를 추근대는 걸 봤다. 같은 남자지만 개새끼다. 저 새끼는 버스카드도 희안하게 댔다. 머리를 카드 기계에다 대니까 삐 소리가 났다. 가발 속에 카드를 넣고 다니나 보다. 그래도 중년새끼는 양반이다. 어떤 놈은 구두를 벗어서 발바닥을 카드 기계에다 댄다. 또 어떤 년은 가슴을 카드 기계에다 대기도 한다. 살다살다 별 그지 같은 꼴을 다 본다. 얼릉 이걸 때려 치던가 해야지...
* 아가씨 ▶새로 발령 받은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상사에게 인사하러 갔다. 상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먼 산만 보고 있었다. 유리창에 반사된 상사를 보니 아까 그 중년 남자였다.
* 중년남자 ▶미치겠다. 아까 추근댄 아가씨가 우리 회사에 오다니.. 무조건 안면몰수다. 잘하면 내일 짤리겠다. 아니 오늘 짤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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